전천후 프리랜서 김태훈이 서울 상왕십리 카페 `유전`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바리스타 일을 시작하면서 그에게는 팝 칼럼니스트, 방송인, 영화 평론가, 작가, 팟캐스트 진행자, 바둑인에 더해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업이 추가됐다. 그는 평생직장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는 요즘 가장 성공적인 `N잡러` 중 한 명이다. [이승환 기자]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낡아가고 있다. `한 우물만 파야 성공한다`는 금언도 밀레니얼 사이에서는 구식 취급을 받는다. 제2, 제3의 직장을 미리 준비하는 걸 넘어 다양한 일을 병행하며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직업관이 확산하고 있다. 투잡, 스리잡을 넘어 `N잡러`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N잡러`는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영어 단어 `잡(job)`,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다. 말 그대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다. 여러 직업을 병행하면서 수입과 자아실현 통로를 다변화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팝 칼럼니스트부터 카페 아르바이트생, 영화 평론가, 방송인, 작가, 팟캐스트 진행자, 아마추어 바둑인에 이르기까지, `N잡러`로 지난 십수 년을 살아온 인물을 만났다. 팝 칼럼니스트로 가장 잘 알려진 김태훈이다. 상왕십리 한국기원 지척에 위치한 카페 `유전`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다. 카페로 들어서니 커피를 내리는 그가 보였다. 


―유명인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니 새롭다. 

▷작년부터 시작했다. 평소 취미가 바둑이다. 바둑 두러 한국기원에 예전부터 들락거렸다. 자연히 근처의 이 카페를 자주 방문했는데, 카페 사장님이 바둑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바둑 얘기하면서 어울리다 보니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작년에는 시간당 8350원을 받았고, 올해는 8590원을 받고 일한다. 최저시급이지만 만족스러운 일자리다.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고, 오며 가며 사람들 만나고 인사하는 게 재미있다. 오늘 인터뷰 전에도 미리 출근해서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셨는데, 이게 행복인가 싶더라. 

―커피를 원래 좋아했나. 

▷원래 커피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커피보다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좋아했다. 향을 즐긴다는 점에서 커피랑 공통점이 있긴 하다. 하여튼 커피에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내 입맛에 여기 커피가 다른 곳보다 유난히 잘 맞았다. 이 카페에서 커피 맛에 눈을 뜨고 그때부터 커피 품종이며 로스팅 방법이며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그 뒤로 여행 가서도 그 지역 유명한 카페는 필수 코스로 들르고,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 좋아하는 것 리스트에 와인, 위스키에 커피까지 더해지니 엥겔지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팝 칼럼니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다양한 일을 한다. 

▷이런저런 일을 한다. 보통 매체에 소개될 때는 팝 칼럼니스트라는 명칭이 따라붙는데, 사실 하나의 직업으로 내가 하는 일들을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지금 하는 일만 해도 여럿이다. 카페 알바, 전업주부, 글쟁이, 팟캐스트 진행자, 아마추어 바둑인…. 이 밖에도 많다. 하고 싶은 일을 하나둘씩 소화하다 보니 여러 업을 갖게 됐다.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왔나. 

▷음악 잡지사 기자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영세한 곳이었지만 1년 정도 일하다 보니 음악계에서 주목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후 음반회사로 옮겼다. 거기서 35세까지 일했다. 정규직이었고, 좋아하는 음악을 다루는 일이니 만족스러웠다. 그러다 회사를 나왔다. 중간에 생략한 여러 사정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좀 더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 그만뒀다. 좀 가난하게 살더라도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자는 각오였다. 정규직에서 프리랜서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17년 동안 프리랜서이자 `N잡러`로 일하고 있다.  

―`N잡러` 프리랜서가 된 이후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아무래도 회사를 나오고 나니 대중에게 노출되는 일이 많아졌다. 팝 칼럼니스트로 일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오히려 더 바빠졌다. 라디오 DJ를 하고, TV에 출연하기 시작하면서 정신없이 살았다. 한창 바쁠 땐 일주일에 TV 프로 다섯 개를 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스케줄로 점점 지쳐갔다. 사람들이 찾아줄수록 수입은 늘었지만 공허했다. 어느 날 술을 마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프리랜서를 했나?` 돈보다 자유가 중요해서 정규직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나섰는데, 정작 내가 별로 원하지도 않는 일로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일을 정리했다. 신변잡기식 예능부터 정리했고, 좋아하는 책, 영화 관련 일을 늘렸다. 그러고 나니 행복해지더라. 돌이켜보면 내 직업은 내가 누구인가, 어떤 것을 지향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에 기반해 내가 좋아하는 일로 일상을 채워나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여러 일을 해온 걸 보니 행동력이 좋은데. 

▷내 장점이 포기가 빠르다는 거다.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다른 걸 했다. 다만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다.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었을 거다. 다만 남들의 평가는 내 손 밖의 일이니 나는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일도 우리네 인생의 일부다.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 순간순간을 즐겨가며 일해야 인생이 행복해진다. 좋아하는 일 여러 개로 삶을 채우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좋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작년 아시안컵 때 우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파울루 벤투 감독이 16강 경기를 불과 나흘 앞두고 이청용 선수가 바다 건너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배려한 일이다. 이런 행동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일도 결국 인생의 일부인 만큼 유연하고 여유롭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말을 들어보니 원하는 일은 다 성취하면서 살아온 거 같다. 

▷그렇지도 않다. 내 인생은 `옆문 인생`이었다. 항상 앞문을 두드렸지만, 그게 열리지 않아서 옆문을 겨우 열고 들어갔다. 팝 칼럼니스트가 된 것도 드러머를 꿈꿨는데 그게 좌절됐기 때문에 찾은 대안이다. 종종 사람들이 나한테 어떻게 하면 팝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내 대답은 이거다. "먼저 음악학원에 등록한다. 다음으로 소질 없으니 그만두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다음 수순이 팝 칼럼니스트가 되는 거다." 드러머가 되고 싶어 학원에 등록해 소질 없다는 소리를 듣고 결국 팝 칼럼니스트가 된 내 얘기다. 영화 평론가가 된 것도 결국 연극영화과에 떨어지고 나서의 일이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 잘 안 풀릴 때 옆문을 두드려서 비슷한 걸 하게 된 것이니 옆문 인생이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걸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앞문을 두드려서 열리지 않으면 옆문, 옆옆문이라도 두드려봤으면 한다. 열릴 때까지 반복하면 뭐라도 나오게 마련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이 프리랜서로 전향했을 때 만족도가 높을지 설명해달라. 

▷프리랜서는 가방을 작게 쌀 수 있는 사람에게 적합한 일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가방을 싸는 걸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는 게 내 지론이다. 가방을 작게 꾸리는 사람은 연연하는 게 적다. 프리랜서는 이처럼 삶을 가볍게 꾸릴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만족도가 높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유연하게 사는 데 무게를 싣는 사람에게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프리랜서라는 게 정직한 노동이다. 일이 없는 날은 그야말로 공치는 거다. 고정적인 수입이 따박따박 발생하는 정규직과 달리 일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수입 격차가 크다. 이것저것 고정적으로 발행하는 비용이 많으면 수입 공백 때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성공한 프리랜서는 고정적으로 많은 수입이 있겠지만, 가장 밝은 면만 보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가장 성공한 프리랜서를 바라보면서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하면 인지 부조화가 일어날 수 있다. 평균치를 봐야 한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범주에 들어갈 확률은 3% 남짓이라고 본다. 성공할 수 없는 확률이 훨씬 높다.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상위 3%에 들지 못했을 때 어떻게 살지 수를 만들어놔야 한다는 거다.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의미인가. 

▷말하자면 그렇다. 이상적인 면만 바라보고 진입하면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올 수 있다. 프리랜서가 되려면 사고도 자유로워야 한다. 예컨대 프리랜서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면, 성공한 웹툰 작가 반열에 들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진입해야 후회가 없다. 성공한 프리랜서 작가가 아닌 `프리랜서 작가의 삶` 자체에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행복한 프리랜서의 삶을 살 수 있다. 성공한 웹툰 작가를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좋다. 다만 목적을 향한 길이 행복하려면 내가 프리랜서의 삶 자체에 만족할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반대로 프리랜서가 절대 맞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타인 시선을 많이 신경 쓰고,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만족도가 낮을 수 있다. 프리랜서는 우직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한테 적합하다고 본다. 기차처럼 정해진 철로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자기가 할 일을 자기가 따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코로나19 때문에 강연이 대폭 줄었다. 수입도 줄었다. 그래서 요새 책 파먹기를 한다. 냉장고 파먹기처럼 쟁여둔 책을 읽는다. 코로나19로 인해 그간 쌓아두고 소화하지 못했던 책을 음미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소비를 줄이고 책과 운동을 늘렸다.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행복한 프리랜서로 살 수 있는 첫걸음 같다.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중시하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다. 

▷그렇다.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다. 명예, 돈, 창의, 자유, 이 모든 게 보장되는 직업은 거의 없다. 여러 가치 가운데 내가 어떤 걸 가장 포기할 수 없는지, 뭘 가장 중시하는 사람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N잡러`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운동은 삶이 밑바닥으로 빠졌을 때 균형을 잡게 해준다. 인생이 힘들다고 해서 술 먹고 잠자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면 안 된다. 정신을 차리는 데 운동만 한 명약이 없다. 평소 여러 운동을 즐기는 편이다. 암벽타기, 헬스, 스쿠버다이빙, 복싱 등 돌아가면서 한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을 했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유도를 했다. 암벽타기는 10년, 복싱은 4년째 해오고 있다.  

 



▶▶ He is… 

1969년생. 팝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영화 평론가, 작가, 팟캐스트 진행자, 아마추어 바둑인이기도 하다. 여러 개 직업을 병행하는 까닭에 `N잡러` 프리랜서 대표 격으로 평가받는다. 중앙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덕여대 창작문학과 석사를 수료했다. 저서로는 `김태훈의 편견`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 `만들어진 질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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