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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ga

2018. 2. 22. 01:20


요가는 형이상학적으로 상키야(Sāṅkhya, 數論)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들에 의하면, 세계는 다수의 ‘자아’와 단일한 ‘원질(prakṛti)’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원질’은 삿뜨와(sattva), 라자스(rajas), 따마스(tamas)라는 세 가지 속성(guṇa)을 갖추고 있는데, 삿뜨와가 밝고 경쾌하고 즐거운 것에 해당하는 속성이라면, 따마스는 이와 반대로 어둡고 무겁고 우울한 것에 해당하는 속성이며, 이 사이에 끼어 있는 라자스는 역동적이고 격정적이며 고통스러운 것에 해당하는 속성으로, 이들이 일정한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가 ‘자아’가 ‘원질’에 접촉하게 되면 먼저 ‘원질’ 내부의 라자스가 동요되면서 세 가지 속성의 평형 상태를 깨뜨리게 되고, 그에 따라 다른 속성들도 덩달아 요동치면서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각축을 벌이게 되는데, 이 가운데 삿뜨와의 요소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 붓디(buddhi) 곧 ‘이성’이 생성된다. 그리고 이 ‘이성’으로부터 아항까라(ahaṁkara) 즉 ‘자아 의식’이 싹트게 되는데, 이 때 삿뜨와가 우세하면 ‘몸’과 더불어 ‘마음’이 생성된다. ‘자아’는 이러한 '몸'과 ‘마음(citta)’을 통해 외부 세계를 느끼고 또한 인식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자아가 ‘몸’과 ‘마음’에 예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엄연히 독립되어 별개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 해도 ‘자아’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따라서 ‘몸’, ‘마음’의 제약을 받지 않는 불생불멸의 신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데, 이러한 무지는 몸과 마음이 깨끗하고 고요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즉 ‘이성’ ‘몸’, ‘마음’이 마치 물결이 이는 오염된 연못처럼 정결하고 고요하지 않기 때문에, 자아는 이러한 연못 수면에 비쳐진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잘못 알게 되고, 여기에서 번뇌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아의 참모습을 제대로 알려면 먼저 자아를 비추는 거울인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동요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 방법을 추구하면서 개발해 낸 것이 바로 요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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